

고구마 장가 간다 / 손두용
무성한 잎들 아래에는
옆이랑과 얽키고 설킨
사연 많은 줄기들을
잘라 주는 낫질이 필요하다
그중에 젊고 싱싱한 순이
붙어 있는 줄기만을 뜯어
지나온 옆 전 이랑에 던져 놓는다
그렇게 던져진 줄기에서
순을 뜯어 가지런히 뉘여
옆이랑에 횡대로 열병시킨다
한이랑 순 열병식이 끝나면
삼발이 수레를 타고 땅과 이별하고
한다발씩 묶여
물을 담은 큰함지박에 세워 담궈 놓는다
순을 잃은 이랑의 땅과
인연을 완전 끊는
고구마 줄기 밑둥을
낫으로 잘라 준다
밑둥 잘린 이랑의 줄기를
낫과 손으로 끌어 모아
빈 이랑으로 옮긴다
이불 비니루를
둘둘 말아 걷어 내서
검정비니루 끼리끼리 모아 두면
이젠 고구마가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쇠스랑과 큰삽,작은삽으로
이랑을 파 나가니
성한놈
잘린놈
쬐게만한놈들이
나란히 누워
5개월만의 하늘을 본다
반나절 물기 말려진
한놈 한놈
붙은 흙 털어 주고
잔털도 문질러 주고
꼭지를 잘라 주니
잘난놈 못난놈으로 나뉘여
출생지를 떠나게 된다
이렇게 장가 가니
순은 아궁이 무쇠솥에 삶아지고 얼려지고
고구마는 월동준비에 들어간다
18 이랑을
하루에 두이랑씩
기계가 아닌 손으로
여럿이 아닌 혼캠으로
가을걷이 고행을
무상무념 수행으로 일군다
2020.10.22(목)
가을걷이 노동의 수행을 하는 시월이다
모두들 행복하소서~
http://blog.daum.net/sdy1956k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