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孫家 人生 / 손두용
옛날
빼어난 경치와 드넓은 초원이
서북쪽에 중랑천,
동북쪽에 아차산, 용마산,
남쪽엔 한강이 흐르는
옛적 조선조 사냥터,산책터였었던
화양리가~
조상의 본적지이며 나의 출생지다
백부,아버지,큰고모,작은고모,숙부
5남매 남겨 두고
할머니 젊어 청상과부 만들고
1937년 할부지 젊어 돌아가신다
그때가 아버지 12살때다
유년기 1950년대
베이붐 세대
나의 기억은
앵두 따 먹고,
깻잎 내음이 진동하는
시골스러운 농토 풍경과
정미소 발동기에 달려 있는
양쪽 큰 쇠바퀴 도는 소리도
피댓줄 빠져 다시 거는
정미소 방아쟁이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소년기 1960년대
큰아버지 도박과 여자놀음 싫은지
화양리 모여사는 형제,친척을 떠나
마장동 작은 조부님댁 근처로
내 이름을 꺼꾸로 한 동네
용두동으로 분가
초가집에 이사하는
울 가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때가 내 나이 6세다
4남매를 먹여 살려 하니
아버지는~
석관,월계동에서 농사를 시작하고
리북 평강여자 어머니는
행상도 마다 않으신다
월전세집 두군데인가 옮기더니
문간채 있는 기와 얹은 우리집으로
집안 마당에서
연탄불 꽁치 굽는 연기가
닭잡고 털뽑는 아버지를 보며
매년 아버지 생신이면
농장식구 30여명,친척이 모여
잔치가 벌어 진다
엄니가 진두지휘 치른다
4남매는 그렇게 보고 크고
전부 용두국민학교 동문이 된다
청년기 1970년대
뺑뺑이 1 세대
시험 안 보고 돌렸더니
은행알 12번 중학교 였던가
용두동에서 멀었지만
철들어라 ~
김수환 추기경님 뵙게 하고
공부하라 ~
서울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일어나라 ~
부모님 돕고쟈 주경야독 결심한다
가자 ~
혜화동 로터리 앞 DS중학에서
동대문운동장 건너편 DS상고로
바꿔라 ~
정작 졸업해서는
취직 말고 공부하기로
그래도 DS상고 나온거 후회 없다
아버지는~
매일 자전거 타고
용두동에서 청량리로 외대를 거쳐
석관동 농장과 월계동 농장으로
가고 오신다
엄청 넓디 넓은 비닐하우스에서
경동시장,용산시장,청량리시장
영등포시장에 내다 판다
勞心焦思
제주도,진도에서 밭떼기한
당근,배추가 운반비도 안 나온다
집한채가 날라 간다
농장 퇴비 더미에서 가져다 주신
느타리버섯이 된장찌개에서
그 향과 찢어져 씹히는 맛을
추억하면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나는~
상고에서 공대로
入營前夜
집마당에서 친구 한놈씩
바리깡으로 고속도로 낸다
그리고 왕십리에서 열차 타고
논산으로 김해로 동대구로
1980년 말년
광주사태 겪으면서
전라도 송정리에서 제대하니
내 나이 24세다
지금까지는 철부지 잘 놀았다
인쟈부터 공부하자
장년기 1980년대
이북여자 울 엄니는~
日久月深
4남매 대학 공부 마치고
직장가서 독립하고
그러고 출가까지 뒷바라지한다
침묵의 세대~
일제 강점기와
어지러운 해방과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한 많은 부모세대의
시대적 환경에서도
자식들을 위한 희생의 역사다
이 세대의 부모가
그 무얼 바라겠는가
물려 줄 재산은 없고
공부시켜서 좋은 직장 들어가고
결혼해서 알콩달콩
잘 먹고 잘 사는 꼴 보는 것이다
이제 나도 而立이다~
자립 해야 한다
기아자동차 입사해서
용두동에서 소하동까지 통근하다
관악역 근처 신혼 분가해서
개봉동 단독주택도 사고
소하리 공장,본사,연구소로
국내영업본부,지점장으로 일하고
집사람은 음악학원 원장으로
큰딸은 첼리스트로
작은딸 바이올리니스트로
결국 두딸은 음대로
전공자 뒷바라지에
아들은 어리지만 경쟁 치열한
한국 벗어나 자라도록
중국으로 보내는
유학 뒷바라지에
돈도 참 많이 든다
不惑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생 변곡점을 맞는다
국내영업 경험으로
강남에서 기아자동차 대리점
사업을 압구정에서 시작한다
IMF 와 정치논리 인지
기아는 부도 나고
현대로 넘어가는 상황이 되니
대리점 접지도 못하고
도곡동,역삼동으로 줄여 간다
IMF 한파에 복잡 현실을
울가족 5명 다 함께
새벽반 수영장으로 풀면서
몇년간 집안 중심을 다져 본다
비보다,
치료차 중국으로 가셨던
아버지 향년 79세로 돌아 가시니
모셔 오고 상치르는데 13일장이다
知天命이다~
불혹의 千辛萬苦 끝에
잊고 살았던 DS상고
절친들과 동창들을 본다
산도 가고, 골프도 치고
밴드도 하고, 행사도 같이 하고
바둑도 두면서
지난 30년간 같이 못 마신
술도 추억도 엄청 마신다
DS중학 동창들도
45년만에 보게 된다
너무 반가워 2박3일 회포도 푼다
내 나이 먹듯이
아들도 커서
해병대 포항으로 군인 가고
둘째 딸도
DS상고 절친과 사돈 맺고
시집 가서
외손녀 난지 2개월이다
셋 자식중 한 자식만 출가했다
耳順이다~
세월은 피할수 없다
아버지 형제 5명은 다 가시고
어머니 형제 5명 중 4명도 가시고
望百 91세 어머니만 홀로 남는다
자식들 한테 일절 손 안 벌리고
모든 일상을 혼자 하는
자기 관리가 철두철미한
강인한 리북여자이다
上壽까지 만수무강 하소소~
아들은
자기 인생의 반 세월을
집 떠나 살아 왔다
직장 다니는 지금도 거의
나가 있다 시피 한다
빨리 지 처밥 먹는 것이 나을 듯~
무엇보다도
진정 하고픈 일 하면서
살 길 바랄 뿐이다
큰딸은
아직도 첼로에 미친 미혼이다
남 짝을 찾는 일도 미쳐야 하는데
첼로와 결혼 한 건지
바쁘게 사니 그나마 다행이다
初志一貫
쉬지 않고 달려 왔다
거울속에 내 얼굴 보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큰 업은 못 이루었지만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인내하고 무게 중심을
놓치 않고 힘들게 살았다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지도 못했고
용기 있는 도전의 삶은 아니었다
2019년에는~
졸업 50주년이 되는
용두국민학교 17회
남동무 여동무 추억도 만난다
65세~
용기 내여 결론 낸다
직원들 협조 구하고
기아자동차,건물주 통보하고
25년 사업 정리도 쉽지 않지만
너무나 시원하다
남은 생은~
농부와 시인이 되기 위해
미니멀 라이프, 소확행 삶을 위해
집사람 고향인
강화도에 거주하며
2018~2019년 텃밭 농사와
2019년 링링 태풍이 지나간
포도밭 큰 농사도 지었다
몸과 마음이 정화 되는
소확행 삶을 질투 하는지
포도 일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2019년10월에
갑작스런 췌장암 큰 수술을 한다
발견하고
장기 셋을 절제하고
단편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아퍼 보니
난제의 술,담배도 절단하고
건강이 최고임을 알게 되는
지금이다~
2020.3.1일
3.1절 100주년 오늘
인생시를 써본다